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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업

중국기업 004 - 화웨이(HUAWEI)

by 피스팍 2022. 10. 27.

중국유학시절에는 사실 아이폰과 삼성폰만 사용하여서 화웨이라는 기업을 잘 몰랐습니다.

지금은 많이 유명한 기업이지만 한 5년전만해도 한국인들은 화웨이?라고하면 어떤 기업인지 잘 몰랐습니다.

특히 샤오미같은 기업은 한국사람들도 직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알 수 있지만 화웨이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직장인으로 무역인으로 중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중국 현지의 휴대폰을 구매하고 사용하다보니 OPPO나 화웨이라는 기업을 알수 있었고, 현재 중국내에서는 휴대폰 판매량에서 삼성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중 무역 분쟁 및 많은 글로벌 이슈로 인해 화웨이에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럼 이제 네번째로 알아볼 중국의 기업은 화웨이입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华为技术有限公司,  Huáwei Jìshù Yǒuxiàn Gōngsī)는 중국의 통신 장비 및 스마트폰 제조 업체이며, 본사는 광둥성 선전시 룽강구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최근 미중 분쟁으로 이제는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 본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럼 화웨이의 기업명부터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대표적인 해석으로는 ‘중화유위(中华有为)’, 혹은 ‘중화지작위(中华之作为)’를 줄인 것으로 ‘중화를 위하는, 중국 · 중화민족의 미래’ 등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심계중화(心系中华), 유소작위(有所作为)’라는 문구에서 각각 마지막 글자를 따서 화웨이가 되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해당 문구는 중화를 마음에 품고, 해야 할 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앞에서 소개한 문구와 모두 일맥상통하죠, 당연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어를 할 줄 안다면, 단순하게 단어 뜻만 봐도 "중국을 위한, 중국을 위해"라는 의미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중국의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으로서 당연히 초창기에 애국 마케팅에는 도움이 되었고, 궈차오의 시대인 작금에는 중국 국내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회사로써 굳이 중화를 강조한다거나 중국을 위한다는 회사명 자체의 한계점은 분명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화웨이는 시작은 중국 덩샤오핑 개혁개방의 심장인 심천(深圳)에서 태동하였습니다. 중국의 테크 기업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87년 설립되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19.7만 명의 임직원, 900여 개의 사무소와 17개 연구 · 개발센터, 36개 연합 센터로 이뤄져 있으며, 현재 전세계 170개 이상의 국가에 진출해 있고, 19.7만 명의 직원 중 연구 · 개발 인력이 10만 명 이상으로 53.4%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기술의 연구 ·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2021년 포춘 500대 기업 중 44위에 랭크되었고, 한국의 삼성이 있다면, 중국에는 화웨이가 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현지인들에게는 좋은? 기업, 멋진 기업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와이프 꿰이미(죽마고우)의 남편이 화웨이에서 약 10년동안 근무를 하였는데, 화웨이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근무기간에서 순환 해외 파견도 많고, 보통 기본 억대연봉자들이기 때문에 가족, 친지외에 주변인들에게는 큰 자랑이 되는 1등 배우자감으로 소개한다고 하였습니다.

 

알리바바는 마윈, 바이두는 리엔홍, 텐센트는 마화텅, 그러면 화웨이는?

화웨이 창업자는 런정페이(任正非)입니다. 간단히 알아보면 런정페이는 1944년생으로 구이저우(贵州)출신이었습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국공내전 시에 국민당 정부쪽에서 일했던 전력으로 반동분자로 찍혀서 문혁 시절(문화대혁명)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으며, 이는 런정페이가 충칭토목공학 대학교 3학년 때 벌어진일이지만 그는 통신, 컴퓨터 관련 서적을 놓지 않고 영어도 독학으로 공부하여 대학 졸업 후 인민해방군에 통신병으로 입대해서 근무했다.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당시 전국 군 과학기술 대회에 참가해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반동분자라는 명목의 연좌제로 인해 늘 승진, 포상 등에서 제외되었고 공산당 입당도 계속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4년 군 감축 정책으로 제대하여 반강제로 사회로 나오게 되며 선전남유집단(深圳南油集团)의 작은 전자 회사에 입사한했지만 장기간 군대에 복무하였기에 사회경험 부족으로 인해 회사 재직 도중 돈을 먼저 건네고 구매한 TV를 받지 못하는, 무려 200만 위안(한화 약3~4억)이 넘는 거액의 사기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1980년대 초에 그 정도 금액은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였고 런정페이는 이를 회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헛수고였고, 사기 금액을 회수하기 전까지 급여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보증 각서도 제출했으나 회사에서 결국 내쫓겨납니다. 이미 불혹이 넘긴 런정페이는 회사에서 잘리고 아내와는 이혼하고 위에는 부양이 필요한 부모님, 밑에는 키워야 할 아들딸을 데리고 있는 미래가 까마득한 상황에 처이게 되지요. 모택동의 문혁시절을 거쳐 등소평의 개혁개방시기가 되자 1987년 선전에서는 민영 하이테크 기업 설립을 촉진하기 위한 18호 문건을 발표했습니다그 문건은 기업 설립 시에 5명의 주주와 2.1만 위안(약 한화 370만원)의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고,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먹고사는 생존을 위해서 런정페이는 중국 우전부 소속 정보통신연구소의 연구원 5명과 2만 위안의 자본금으로 화웨이를 설립하고 마침내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의 나이가 불혹을 한참 넘긴 43세에 간신히 사업을 시작한 그였지만 현재는 중국 내에서 런정페이의 인지도는 한국에서의 현대 정주영, 삼성 이병철 등 기업인 못지않게 널리 알려지게 되죠. 이렇게 그의 명성과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창업하기엔 상당히 늦은 시기인 43세에 화웨이를 출범시켰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늦깍기 창업자로 유명한 사람은 화웨이의 런정페이와 더불어 40세에 창업한 롄샹(联想, 레노버)의 류촨즈(柳传志) 등이 있습니다.

 

일반 기업과 다른 화웨이만의 특별한 기업문화 형성 이유 = 런정페이

1. 위기의식과 성과 지향

2. 근검절약와 소박함

3. 주식분배를 통한 실질적 주인의식 주입

4. 낙관주의

 

이상의 네가지는 현재 화웨이의 기업문화 형성이 된 런정페이의 성격?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로 과거 미국 트럼프 정부 시절 반도체 수출 금지를 비롯한 각종 제재를 받고서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화웨이의 컨슈머 사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도 역시 긍정적인 정신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런정페이 왈 ‘트럼프가 화웨이를 전 세계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어서 정말 고마운 일이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화웨이가 이토록 뛰어난 기업이고 미국이 경계해야 할 기업인지 몰랐을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화웨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스마트폰이 고사 위기에 처해서 모두가 곧 화웨이가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발언을 통해 의연한 자세를 통해 화웨이 내부 결집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미국 제재에도 대외적으로 문제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낙관적이자 대담한 발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지금 미중무역분쟁 속에 화웨이와 관련하여 살짝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출처 : 뉴스핌

 

미국 주도로 서방 세력의 중국에 대한 압박이 ‘화웨이 죽이기’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데에 중국인은 화웨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대한민국의 일반인 뿐만 아니라 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인의 입방아에서 끊임없이 언급되어 핫해진 유명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화웨이가 무슨 일을 했길래 미국은 화웨이를 못쳐내서 안달일까요?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화웨이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에 공장 출시부터 설치되어 논란이 된 백도어 소프트웨어(Back door S/W)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백도어가 탑재된 통신장비나 스마트폰은 사용자의 통화 내역을 비롯한 위치 및 사용 내역 등이 모니터링되어 중국 서버로 전송하므로 미국 및 유럽에서는 화웨이 제품 금지령이 내려졌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화웨이 죽이기’까지 급격하게 진도가 나가게 된 것이죠, 또한 과거 화웨이 스마트폰에 설치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상하이 Adups의 변호사도 백도어 S/W 설치를 인정했으나, 해당 회사는 중국 정부와 관련이 없는 사적인 회사이며 실수였다는 것을 강력히 피력했고, 현재 화웨이는 자사의 모든 통신장비 관련 제품은 최고등급의 보안 인증을 획득했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며 (실제 네트워크 보안 관련 각 국가별 최고 인증 획득) 자신들은 백도어 논란에 대해 떳떳하고 하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는 화웨이의 주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백도어 기술 자체는 애당초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시작되었고, 중요한 것은 백도어 S/W의 효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을 벌일 수 있는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경계하며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통신장비를 퇴출시키려는 것이죠. 백도어 논란 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 조금 더 심층적인 이유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가장 근간이 되는 5G를 필두로 한 AI, 빅데이터 등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화웨이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향후 미래기술경쟁, IT경쟁 일환으로 그 싹을 초장에 제거해 버리고자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제재를 거는 것이지요.

 

 

시작과 발전

사실 화웨이는 기업설립 초기에는 홍콩을 넘나들던 무역을 위주로 하는 보따리상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이제 막 개혁개방을 시작한 촌구석에 불과했던 심천은 주로 홍콩과의 교역, 홍콩의 투자를 자양분으로 성장 중이었기 때문에 심천에 자리 잡은 화웨이 역시 홍콩에서 제품을 들여와서 중국에 되파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통신장비, 화재경보기는 물론이고 온갖 식품 등 잡화까지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몽땅 떼다가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홍콩 홍니엔(鸿年)의 소형 전화교환기를 들여와서 중국에 파는 것으로 시작으로 처음으로 큰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화웨이의 통신장비 사업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당시 화웨이는 전화교환기 대리판매에서 승승장구하며 점점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오히려 업계에서는 독점적인 행태로 인해 오히려 물량을 제때 받지 못하는 예상 밖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기존에 구매 계약을 맺은 고객들에게 제품을 공급해야했기때문에 물량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예전보다 훨씬 비싼 값에 전화교환기를 구입하기도 했죠, 이러한 외부 공급의 리스크를 겪어본 런정페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접 전화교환기를 만들기로 합니다. 실제 런정페이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逼上梁山’, 소설 ‘수호지’의 여러 영웅호걸이 여러 상황으로 인해 송나라 관군을 비해 어쩔 수 없이 양산으로 쫓겨 들어가서 반란 집단이 된 것에 비유했습니다. 그렇게 런정페이는 교환기 대리상으로 벌어들인 거의 모든 자금을 투입하여 1990년 자동으로 전화 연결해 주는 교환기인 PBX(Private Branch Exchange) 자체 개발하고, 1991년 SPC(Stored Program Control) 교환기 개발에 착수하여 첫 상용화에 성공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 개발에 성공하지만 사실 런정페이가 인정한 대로 초창기 화웨이같이 작은 기업이 통신장비를 직접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상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도 같은 무모한 도전이었고, 화웨이에겐 기술개발이었겠지만 글로벌 통신장비 처지에서 봤을 때 순전히 자신들의 제품을 뜯어다가 조잡하게 모방한 수준에 불과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담군 발을 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뚝심과 집념으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며 SPC 교환기에 이어서 디지털 프로그램 제어 교환기 개발에 비용과 인력을 모두 투입했고, 이런 모습이 화웨이의 기업 문화?가 되버립니다. 그 예로 바로 야전침대 문화가 있는데, 연구개발에 매달리다가 지쳐 쓰러지면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일을 시작하는 빡세디 빡센 전근대적인 기업 문화였고, 화웨이와 런정페이의 생존 방식이 된 것입니다.

 

1992년 첫 자체 통신장비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화웨이는 3~5선의 지방 도시과 농촌지역을 먼저 공략하고 중국 연안의 1~2선 도시를 나중에 진출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는 중국어로 ‘农村包围城市’(직역하면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 즉. 농촌부터 진출해서 기반으로 닦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를 공략한다)라는 중국이 워낙 넓다 보니 지방 도시와 농촌지역을 먼저 공략해서 거점을 마련한 후에 다시 대도시를 공략하는 마케팅 전략을 말하는 거죠. 아직도 수많은 중국 기업이 이 전략을 여전히 애용합니다. 당시 중국 농촌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한 경제발전으로 유선 전화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이로 인해 인한 통신장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5선 도시와 농촌지역에는 기존에 중국 1~2선 도시 위주로 진출한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들의 영향력이 많이 닿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화웨이는 농촌지역 공략에 공을 들였고 그 과정에서 사업 경험을 쌓고 실제 통신 네트워크 운영 실력과 관련 영업망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1993년 화웨이는 중국인민해방군에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문화대혁명 시절에 반동분자의 아들로 낙인찍혀서 온갖 수난을 받았던 굴레를 벗어 버리면서 중국군에 납품하는 애국 기업의 면모와 화웨이의 기술력을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는 쾌거였으며 이를 계기로 급격하게 몸집을 불린 화웨이에서 런정페이는 기술개발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1998년 ‘화웨이 기본법’을 만들고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것을 명문화시킵니다. 1995년에 화웨이는 통신장비 분야 발전 전략을 ‘자주혁신을 통한 첨단기술 개발’로 정하고 당시의 통신기술인 3G에 대한 특허와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많은 역량을 투입합니다. 그 결과 불과 1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1999년 에릭슨, 노키아 등 쟁쟁한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을 제치고 중국 통신장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중국 내수시장에서 자신감을 얻은 화웨이는 1997년부터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기술력과 영업망, 그리고 해외 통신장비 운영 경험으로 따지면 여전히 글로벌 선도 기업에게는 한참 못 미쳤던 화웨이는 내수시장 공략 방법과 유사하게 신흥 시장부터 진출을 모색하여 1998년부터 화웨이는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인도 그리고 남미 등의 신흥국의 통신장비 시장에 본격 진출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화웨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많은 보조금과 다양한 세금 혜택을 부여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력, 글로벌 네트워크 운영 경험 미숙과 열악했던 통신장비 품질은 미국, 유럽 통신장비 기업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저렴한 가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극복했습니다. 신흥 시장을 공략한 후 2001년부터는 선진국 시장인 유럽, 2003년부터는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저렴한 가격 외에 화웨이가 추구했던 공격적인 마케팅이란 해외 영업팀에서 각국의 주요 통신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통신장비 신뢰성 확보를 위한 무료 테스트베드 설치, 일정 기간 운영 및 유지보수에 대한 무료 제공과 빠른 서비스 피드백을 위해 화웨이의 유지보수 인력을 현지에 상주시키는 조건 등이었지요, 그러다보니 해외주재원들, 파견인원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타국의 현지 업체들은 이런 파격적인 조건으로 실제로 화웨이의 통신 네트워크를 시범 운영을 해 본 후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구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렇게 글로벌 시장 공략과 꾸준한 연구개발을 거쳐서 2012년에 에릭슨을 누르고 화웨이는 마침내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웨이는 기존의 통신장비 시장의 생태계를 강제로 구조조정 시킨 미꾸라지 어항의 포식자인 메기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2000~2010년 사이의 3G 통신망 보급 시절만 하더라도 알카텔(1872년 설립), 루슨트(1870년), 지멘스(1865년), 노키아(1865), 모토로라(1928), 에릭슨(1876년), 말코니(1998년), 노텔(1895년) 등 짧게는 10년, 길게는 150년 이상의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이 즐비했으나 화웨이가 기술,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급격하게 성장하자 전통의 강호들이 시장을 뺏기고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부득불 서로 인수합병을 거듭했습니다. 결국 알카텔, 루슨트, 지멘스, 모토롤라 등이 노키아로 합병됐고, 노텔과 말코니 등이 에릭슨으로 합병되었고, 현재는 구조조정이 거의 완료되어 노키아, 에릭슨, 시스코(Cisco) 그리고 중국의 화웨이, ZTE와 한국의 삼성전자 정도 말고는 통신장비 업계의 빅샷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화웨이의 주요사업 분야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5G 등 무선 네트워크와 유선 네트워크 통신장비의 구축 및 유지보수를 기반으로 하는 ‘캐리어 네트워크(통신장비)’ 사업 분야가 있습니다. 둘째, 시스템, 데이터의 관리와 클라우드 솔루션을 제공하는 ‘엔터프라이즈(기업 대상 B2B)’ 사업 분야가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워치 등 각종 스마트 디바이스를 제조 및 판매하는 ‘컨슈머(소비자 대상)’ 사업 분야로 구분됩니다. 비록 최근에는 스마트폰 위주의 ‘컨슈머’ 사업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과거 매출 비중의 최고 기여도이자 화웨이의 출발점은 ‘캐리어 네트워크’ 사업입니다.

 

 

출처 : 델오로 삼성과 화웨이, 에릭슨의 통신장비 점유율

 

B2B 분야라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화웨이의 대표 사업이자 화웨이의 DNA를 이루는 핵심 분야는 ‘캐리어 네트워크’ 사업입니다. 유무선 통신장비 분야에서 과거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최고 기업이었던 에릭슨(ERICSSON), 노키아(NOKIA), 알카텔(Alcatel), 시스코(Cisco), 지멘스(Siemens) 등을 차례차례 제치고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화웨이의 자부심이 그대로 녹아 있는 분야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캐리어 네트워크’ 사업은 화웨이의 약 35%의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사업이 2020년 말부터 급격히 위축되는 조짐이 보이므로 당분간 다시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듯 합니다. 화웨이는 1G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2G 시대에서는 추종자, 3G 시대에선 경쟁자, 4G 시대에는 주도 그룹이었지만 5G 시대에서만큼은 자신들이 규칙 제정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기술력과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이를 부정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핵심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5G 통신망에서 화웨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 정부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만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넘어서 실제로 다양한 제재 조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통신장비 분야와 달리 2020년 2분기까지만 해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20%(동기간 중국 내수 점유율은 40% 이상) 전후를 차지하며 이미 13% 내외의 애플을 저 멀리 제치고 삼성과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던 화웨이의 ‘컨슈머’ 사업은 미국 반도체 수출 제재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웨이 스마트폰은 2019년에 역대 최대 출하량인 2.4억 대를 찍을 때까지 줄곧 고속 성장을 해왔으나 2020년 9월 미국 반도체 제재가 발효함으로써 2020년 최종 출하량은 1.9억 대로 삼성(2.65억 대), 애플(1.92억 대)에 이은 3위에 그쳤습니다. 2020년 연간으로 보면 약 20% 감소세지만 반도체 제재 이후인 2020년 4분기만 본다면 출하량은 3,300만 대로 동기 대비 무려 약 40%가 감소했고, 이는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 중에 6위로 삼성, 애플은 물론 샤오미, 오포, 비보의 뒷자리로서 처음으로 근 6년 동안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이 5위로 밀려난 것입니다. 수치상으로 봐도 화웨이의 ‘컨슈머’ 사업이 거의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화웨이의 ‘엔터프라이즈’ 사업 분야는 5G,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데이터 관리 등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과 관련된 모든 I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최근의 성장세가 가파르며, 매출 비중은 약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3가지 대표 사업군은 2011년에 개편되어 현재까지 큰 줄기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상기한 대로 최근에는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미국발 타격을 입어서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필요한 상황이라 2020년 11월 스마트카 분야 사업 부문이 ‘컨슈머’ 사업 부문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화웨이는 자동차 제조지원, IoT(사물인터넷), 반도체 제조 등 신규 영역으로도 사업을 확대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화웨이 실적
가트너 외 자료 취합표

 

화웨이의 무서운 점은 단지 유선 통신장비를 비롯한 무선 이동통신 장비에 해당하는 기지국(Radio Unit), 스몰셀 기지국(Small Cell Base Station), 중계기(Repeater), EPC(Evolved Packet Core, 교환국)을 자체적으로 제조, 운영 및 유지 · 보수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통신 관련 특허, 반도체(칩셋) 기술과 더불어 스마트폰 기술까지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는 것이고, 이런 통합적인 능력으로 각 통신사업자의 요구에 맞춰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신장비 관련 전방위적 능력은 화웨이 외에는 다행스럽게 한국의 삼성 밖에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현재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분야의 최대 경쟁자인 노키아와 에릭슨 모두 반도체 칩셋과 스마트폰 분야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삼성과 화웨이, 양자의 차이점이 있다면 5G 이동통신 장비 분야에서는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에서 화웨이가 삼성을 압도하고 있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반대로 삼성이 화웨이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웨이는 이미 2019년 기준으로 5G 통신장비 기술력에서는 12~18개월 이상 삼성전자를 앞서있다고 판단한다고 저우웨펑(周跃峰) 화웨이 무선네트워크 부문 마케팅 부사장의 말했습니다.  이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실제로 5G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화웨이를 목표로 하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3년 전 발언이니 지금은 더 차이가 벌어져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연간 5G 통신장비 시장점유율도 화웨이(31.7%)가 삼성(7.2%)에 무려 4배가 넘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021년 기준 5G를 포함한 모든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글로벌 점유율은 28.7% 대 3.1%로 거의 10배 차이 남) 실제로 지금의 위기는 제외한다면 지난 30년 동안 화웨이는 한국 주요 통신사를 포함한 전 세계 여러 통신사와 함께 세계 1,500여 개의 통신망을 구축했고, 30억 명이 넘는 인구를 유무선 통신망과 인터넷으로 연결했고, 그 결과 화웨이는 과거 2G, 3G의 통신 기술 발전 경로에서 한참 뒤처진 후발주자에서 4G 시대부터 점차 선두 그룹으로 치고 올라왔으며 5G 시대에서는 의심할 수 없는 선도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웨이의 ‘컨슈머’ 사업 분야에서는 단연코 스마트폰이 가장 주력 제품이지만 그 외에도 노트북, 스마트TV, 태블릿(패드), 스마트워치, 스마트글라스, 스마트스피커, 스마트스크린, 스마트홈 관련 제품, VR헤드셋 등 종류로 따지자면 삼성, 애플, 샤오미에는 못 미치지만 다양한 소비자용 전자제품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중심에 두고 8개의 주요 IT 디바이스로 주변을 둘러싸고 그 외는 협력사의 제품으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1+8+n’ 전략을 실행 중입니다.

 

1 - 스마트폰

8 - TV, AI 스피커, AR · VR 스마트글라스(안경), 스마트워치, 자동차, 이어폰, 컴퓨터, 스마트패드

N - 스마트홈(가전), 헬스케어, 엔터테인먼트, 모빌리티, 이동사무실 등을 지칭

 

샤오미와 마찬가지지만 화웨이 역시 이 모든 전략에는 스마트폰이 중심축을 이루기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이 중요하지만 현재 스마트폰 시장이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에 화웨이는 각종 대응책을 쏟아 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별도로 화웨이의 휴대폰 사업 분야 관련 포스팅을 하겠지만 이렇게 전 세계 스마트폰을 주름잡던 화웨이는 2020년 4분기부터 미국 제재로 인한 반도체 수급 중단과 구글 안드로이드 기술지원 중단 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온,오프라인 투트랙으로 운영하던 서브 브랜드인 아너(Honor)를 2020년 11월에 매각합니다. 기존에는 화웨이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던 아너는 완전히 화웨이의 품을 떠나서 신생 독립 회사가 되었고, 기존의 화웨이 출하량의 약 30% 정도를 차지하던 아너의 매각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화웨이의 스마트폰 존속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론에서는 화웨이의 품에서 벗어나야 아너라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아너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하지만 미국 정부가 아너를 화웨이와 무관한 회사로 간주해 반도체 수급 제재를 풀어 줄지는 미지수입니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절정으로 무르익은 기량을 보여 주던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에 점점 시들어 가는 분위기가 되었으며 더욱 화웨이에게 우울한 것은 앞으로도 당분간 극적인 반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1년 2분기 기준으로 화웨이가 잃어버린 시장점유율은 샤오미가 제일 많이 가져갔고 오포와 비보도 일부 나눠 가져갔으며, 고작 1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기에 화웨이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격렬한 흥망성쇠 과정을 몸소 겪은 것입니다.

 

 

미래

이렇게 화웨이의 ‘컨슈머(B2C)’ 사업은 스마트폰에서 손발을 묶였으므로 반강제적으로 새로운 먹거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화웨이 산하 투자부문 자회사(CVC 느낌)인 하보커지터우즈(哈勃科技投资, 허블 테크놀로지 투자회사)는 2021년 노광장비의 광원 시스템을 제공하는 베이징커이홍광뎬커지(北京科益虹源光电技术有限公司)에 8,200만 위안을 투자해서 4.7%의 지분을 확보했으며, (EUV 노광장비는 반도체 칩에 회로도를 그리는 장비로 반도체 공정의 핵심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직접 찾아가서 챙겼던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본사를 둔 ASML이 바로 이 분야의 최고 기업) 지금까지 화웨이 역시 거의 ASML을 비롯한 외국회사에서 이를 전적으로 의존했지만 이번 투자를 통해 광원시스템 리스크를 어느정도는 해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베이징커지홍위안이 광원 시스템 분야에서 중국 최초로 고에너지 엑시머 레이저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화웨이는 허블 테크를 통해서 전력 반도체, 인공지능 반도체, 실리콘카바이드 등 다양한 반도체 회사 30곳에 투자했고, 미국의 반도체 제재 이후에는 화웨이의 반도체 투자 방향이 상당히 바뀌어서 직접 납품이 아닌 기초기술 단계의 반도체 기업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분야를 보면 화웨이는 직접적으로 자동차 생산까지는 뛰어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통신 네트워크와 ICT 분야에 강점이 있으므로 이미 여러 자동차 기업에게 각종 통신 관련 부품과 솔루션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을 비롯한 스마트카 시장에서는 화웨이의 활약이 또 새롭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며, 관련해서 2020년 말부터 화웨이는 중국 완성차 기업인 창안자동차(长安汽车)와 중국 배터리 분야 대표기업인 CATL(닝더스다이, 宁德时代)와 함께 스마트카 브랜드를 출범할 계획을 세우고 협업 중입니다. 또한 스마트카 관련해서 핵심 부품인 라이다 센서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지만 화웨이는 자동차를 직접 제조하거나 자동차 회사에 투자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최근 ‘새로운 기회, 새로운 생태계(新机会, 新生态), 중국자동차산업발전 고위포럼’에 참석한 화웨이 스마트카솔루션BU 마케팅 및 판매 서비스부 츠린춘 총재는 “화웨이는 자동차를 제조할 역량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동차 기업의 지분을 갖거나 투자할 확률이 1%도 없다”고 또 자동차 산업 진출에 대해 다시한번 강력하게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화웨이의 행보를 보면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와 함께 자동차 분야에도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최근에 큰 타격을 입은 스마트폰을 대신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이 당연한 모습일 텐데 또 미국 등의 집중 견제를 피하고자 허허실실(Low profile)의 행보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화웨이는 2021년 6월에도 화웨이는 자동차 전자제어 및 시스템, 주차, 스마트 미러링 등 전기차와 자율주행 차량 관련 특허를 계속 공개하고 있고 베이징자동차, 창안자동차, 광저우자동차와 파트너십을 맺고 화웨이 자율주행차를 서브 브랜드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선전에서도 매장 평수가 약간이라도 큰 화웨이 매장에는 화웨이의 시리스(Seres, 赛力斯)라는 서브브랜드 자동차가 전시된 곳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매장 내에 전시까지 하면서 팔고 있는데 자신들은 결코 자동차를 만들 생각이 없고 그저 자동차 들어가는 기술만 제공하는 화웨이 인사이드(Huawei Inside, 과거 인텔 인사이드 벤치마킹) 전략만 고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화웨이가 스마트폰에서 반 이상 꺾인 날개를 과연 반도체와 자동차 등 다른 분야에서 급속도로 성장할 지 궁금할 뿐입니다.

 

앞에서 다뤄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의 인터넷 빅테크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서 다양한 일들을 벌이고 있고, 살펴보면 나름의 생존 전략도 보이고, 더불어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눈에 들어오는데 화웨이 같은 진정한 제조 기업은 눈에 띄는 전략이나 방법이 없는 듯 해보입니다. 말 그대로 제조업은 왕도가 없는 뻔한 길이지만 그 길을 얼마만큼 착실하게 잘 걸어갔는지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달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앞을 내다본 연구개발 투자, 이를 통한 기술력 제고와 비용 절감, 기업별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 어떻게 시장을 선점하고 운용했는지에 관한 내용이 주된 분석이 될 수밖에 없어서, 별 재미가 없지만 원래 제조업이란 업종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의 미래가 어둡게 보지 않는 이유는 연구개발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1998년 런정페이의 주도로 만들어진 ‘화웨이 기본법’에 화웨이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고 명문화시킴으로서 연구개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특허를 살펴보면 화웨이의 유효 특허는 4만 건 이상, 화웨이 관계사를 포함한 화웨이의 특허는 총 10만 건 이상에 달하며 그중 미국과 유럽에 등록된 특허는 4만 건 이상에 달합니다. 이는 화웨이의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건수 면에서는 다른 업력이 긴 기업에 비해서 많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의 특허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밝다고 보입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제네바 본부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6년 PCT 4,906건, 2018년 PCT 5,405건, 2020년 PCT 5,464건을 출원하며, 2017~2020년 4년 연속으로 세계 1위 특허 출원 건수 기업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2020년 기준 세계 특허 2위는 한국 삼성(3,093건), 3위 일본 미쓰비시(2,810건), 4위 한국 엘지(2,759건) 순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부분은 5G 표준 특허 분야에서 화웨이가 최대 특허 보유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유럽통신표준기구 2018년 기준으로 화웨이가 1,481건으로 1위이며, 에릭슨이 1,134건, 삼성 1,038건으로 뒤를 잇고 있고 5G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폴라코드 기술의 특허는 전체 특허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독보적인 수준이며, 이러한 데이터를 볼때, 연구개발에 상당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쏟아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성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성과 창출 키워드: 늑대 문화, 야전침대, 구조조정

화웨이는 위에서 본 대로 연구 · 개발에 목숨 건 기업이다. 연구 · 개발에 비용과 인력을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므로 제대로 연구 방향을 잡기 위한 노력과 실제로 투입된 자원이 제대로 결실 맺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한다. 그 결과가 화웨이 특유의 압박문화다.

화웨이의 야전침대 전통은 어쩔 수 없이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직원들의 고육지책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이를 기업의 유구한(?) 전통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늑대와 같은 후각을 발휘해 고객의 니즈를 발견하고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팀워크로 미친 듯이 일하라는 늑대 문화도 모두 실적 압박에 기인하는 화웨이의 문화다.

글로벌 통신장비 업계의 후발주자였던 만큼 시장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기술 발전을 이뤄 내야 했으며 그 과정 중에 여러 과제가 생겨나는데 직원들은 그 압박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런 기조는 쉽게 바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특히 창업자인 런정페이 자체가 군인 출신이므로 화웨이 초창기부터 군대 문화를 도입하여 직원들의 결속을 다지고 전투 정신을 강조하여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조직의 긴장감을 불러왔다. 초창기 화웨이 직원들은 모두 회사에 침대를 두고 사무실에서 생활했다. 이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신입 사원에게 야전침대를 선물해서 초기의 창업 정신을 상기시키는 전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전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 화웨이 선전 본사의 밤낮없이 불 켜져 있는 연구동 건물의 창문을 보면 살짝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런정페이가 군인 출신이라서 몇몇 부서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근무 시작 전에 인민해방군 복장을 하고 다 같이 모여서 군가를 부르면서 40분 이상씩 구보를 하며 정신 및 체력 단련을 시킨다.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회사에서 강요하는 군대식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과에 대해서 큰 압박을 주는 만큼 화웨이의 급여 조건은 당연히 업계 최고 수준이다. 런정페이는 돈을 충분히 준다면 인재가 아닌 사람도 인재로 만들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주창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조직에 충성하고 성과를 만든 직원에 대해서는 철저히 성과에 따라 큰 금전적 보상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성과가 낮은 하위 5% 직원들에 대해서는 상시 구조조정을 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되는 중요 포인트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기 급여, 업적평가에 따른 보너스, 연말 주식 보유에 따른 배당금을 합치면 업계 최상위의 급여가 보장된다.

앞서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를 이야기할 때 이런 강력한 압박문화의 일환으로 일정 연차 이상 직원에 대한 일괄 사표를 받고 다시 화웨이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만 재입사를 시켰던 것도 이런 거센 성과주의 문화와도 일맥상통한다. 모범을 보이고자 런정페이도 정식 퇴사 절차를 밟고 3,000번대 사원 번호를 받고 재입사한 이력이 있다. 알수록 재미있는 회사가 아닐 수 없다.

 

화웨이의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화웨이는 비상장 회사로서 전 직원들이 가상 주식의 형태로 화웨이의 지분을 소유하는 있다는 것입니다. 창업자인 런정페이가 겨우 0.81%의 지분만 소유하고 있고 99.19%의 지분을 화웨이 임직원들이 우리사주 형식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직원 대부분이 화웨이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주식 획득 조건은 임직원 직급과 회사에 대한 기여도로 판정되며, 보통 입사 3년 이상 된 임직원은 가상 주식 지분을 가질 수 있고, 이는 매년 화웨이가 영업이익을 임직원들에게 배당금의 형태로 지급합니다. 참고로 화웨이의 직원들은 보통 3가지의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첫째가 정기 급여, 둘째가 연말 KPI, 즉 업적평가에 따른 보너스, 셋째가 바로 주식 보유에 따른 배당금 분배입니다.

화웨이의 특이한 지배 구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가 자신들의 통신장비와 각종 네트워크 관련 기술에 대한 사업 기밀을 지키기 위한 것, 두 번째가 상장 시에 피할 수 없는 외부의 경영 간섭을 막고 기업 공개를 통해서 상장하면 외부에서 급격한 거대 자본이 들어옴과 동시에 화웨이의 경영에 간섭하게 되는 동시에 상장으로 인해 회사 내부에 벼락부자들이 많아지는 부의 쏠림 상황에서는 직원들이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며, 비상장 함으로서 화웨이는 고객을 바라보며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비상장을 통한 종업원 지주제를 통해 화웨이의 모든 직원이 책임과 이익을 공유하도록 독려하고 모든 직원이 회사에 주인 의식 갖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즉, 직원들은 비록 주식에 대한 처분권이나 경영권 행사는 없이 영업이익에 대한 배당을 받을 뿐이지만 이로 인해 회사에 대한 강한 주인의식과 애사심을 고취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화웨이 직원들을 만나서 이런 종업원 지주제에 대해서 물어 보면 대부분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연차가 높은 직원들은 거의 빠짐없이 화웨이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매년 나오는 배당금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하는 눈치였고, 3년 차 미만의 신입들은 향후 갖게 될 주식(물론 무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유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게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큰 편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보상을 해 주는 종업원 지주제도가 있으므로 초창기부터 화웨이에서 추구되는 강도 높은 실적 압박문화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야전침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배경이 되었고, 아무리 처음 입사했을 때 애사심이 충분한 상태였더라도 적절한 보상 없이 회사에서 퇴근도 못 하고 회사에서 먹고 자고 일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큰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상장 기업이 갖는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거대한 기업이 상장회사가 아닌 경우는 서구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서방 국가는 화웨이가 이런 비상장 기업이라서 중국 정부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런정페이는 기업이 한 사람에게 의존할 때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의존할 때 더욱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2004년 8명의 임원관리팀(EMT, Executive Management Team)의 멤버들이 의장을 번갈아 맡는 형태로 운영되다가 멤버 전원이 2번씩 의장을 맡아본 8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쳐서 2012년부터 CEO 순환제도로 정착하였습니다. 회사 이사회 및 상무 위원회 의장은 순환 CEO가 주재하여 순환 CEO는 6개월의 임기 기간 중 회사의 최고 지도자이며 아래 순서에 따라 순환 CEO에 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지만 화웨이는 전 세계에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다 보니 무려 170개가 넘는 국가에 진출했고, 해당 국가에서 각종 문제를 예방하고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최대한 현지화에 신경 쓴 부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요소입니다. 한국에서의 예를 들자면 화웨이는 2014년 중국 기업 최초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에 가입한 바 있고 한국장학재단을 통해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총 5억 원의 장학금을 110명의 ICT 전공 장학생에게 전달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 17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현지화율이 무려 70%가 넘을 정도로 현지 채용에 적극적이며, 한국 화웨이에서도 예외 없이 대부분 한국인을 채용하여 현지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간 좀 특이하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부터 반도체 구매 업무가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영업 부분은 오히려 그에 비중이 미미했지만 최근 LG U+에 5G 통신장비를 납품에 성공하면서 한국에서의 영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확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 외에 세계 각지에 연구 · 개발 센터를 설립한 것도 현지화를 넘어 현지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 스웨덴, 독일, 인도,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16곳의 연구개발센터를 건립하여 운영 중이며 연구원 중 1/3은 현지 외국인 인력을 채용하는 것들 등 최적 현지화의 노력들은 화웨이의 강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편에는 중국의 쿠팡이라고 이야기하는 징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휴대폰관련 포스팅에 화웨이를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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